"현실 안 맞는 행복출석부.. 되레 스트레스"

2013. 5. 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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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초·중·고교 도입 두 달

"행복출석부 활용하냐고요. 입장 바꿔놓고, 직장에서 상사가 직원들 30∼40명 모아놓고 이름 부르면서 오늘 기분 얘기하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많은 사람 앞에서 솔직한 대답이 나오겠어요. 교육청에서 공문까지 보내면서 행복출석부 하라고 하니까 공식적으로는 '한다'고 대답하죠. 그렇지만 실제로 하는 선생님은 거의 없습니다."

서울 강서구 A중학교 B교사는 1일 행복출석부를 쓰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행복출석부는 교사가 출석을 부르면 학생이 자신의 감정을 함께 대답하는 것이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1998년 서울대 교육학 교수 시절 직접 고안한 것으로, 올 신학기부터 서울지역 모든 초·중·고교에 도입됐다.

행복출석부에는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에 번호를 매긴 감정조견표가 있다. 조견표에는 1번 '가슴이 벅차다', 2번 '양보하고 싶다' 등 긍정적인 감정부터 41번 '안타깝다', 42번 '허전하다' 등 부정적인 감정까지 42개의 감정이 있다. 이를 토대로 교사가 '홍길동'하고 부르면 학생은 '네, 1번입니다'와 같이 대답한다.

시교육청은 3월 행복출석부 활용법 안내라는 제목으로 이를 권장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각 학교에 보냈다.

B교사는 "수업마다 출석을 부르는 것도 현실에 맞지 않거니와 학생들도 처음엔 장난스럽게 대답하다가 나중엔 귀찮아 하더라"며 "어떤 반에서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반 학생 전체가 '불안합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서울 성동구 C초등교 D교사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는 "원래 월요일에 학생들을 만나면 주말에 어떻게 지냈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는데, 행복출석부 때문에 오히려 불편해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행복출석부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교육청에서 왜 이런 것까지 간섭하나 싶어 불쾌하기까지 했다"며 "출석 같은 실천적 영역은 교사에게 맡겨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시교육청은 행복출석부에 대한 본격 연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행복출석부 활용률은 초등학교 75%, 중학교 49%, 고등학교 13%로, 서울시내 전체 학교의 51%가 활용하고 있다. 시교육청은 행복출석부 활용률이 절반을 넘어섬에 따라 오는 10월까지 실제 교육현장에서 교사와 학생이 느끼는 효과와 만족도를 분석한 뒤 효과가 입증되면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을 권장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나영이 사건' 주치의로 알려진 소아정신과 전문의 출신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감정이란 영역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프라이버시"라며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지 않을 자유가 있는데, 이걸 모든 사람 앞에서 공개하도록 한 것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감정을 밝히기 싫은 학생은 거짓말을 해야 하는 비교육적인 일까지 벌어질 수 있다"며 "이런 제도를 추진할 때는 정신의학 전문가 등의 충분한 자문과 연구를 거쳐야 하는데, 행복출석부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초기에는 학생들이 장난스럽게 대답하다가도 나중에는 부정적인 감정까지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아직 시행 초기인 만큼 좀 더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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